대머리 유전자는 우성입니다. 그래서 가계에 대머리가 있으면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식으로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머리가 유전에 따라 발현되는 만큼 시점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 대머리가 된다”는 비과학적인 얘깁니다. 대머리 그 자체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대머리가 되기 쉬운 체질이 유전되는 것입니다. 즉, 가능성과 확률의 얘기지, 언젠가 반드시 대머리가 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물려받은 유전자로 인해 대머리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머리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대머리 유전자는 어버이로부터 자식에게 전해집니다. 2개의 쌍으로 이뤄져 있는 유전자 중 한쪽은 아버지로부터, 다른 한쪽은 어머니로부터 전해집니다. 아버지가 모발의 유전자 가운데 대머리의 유전자를 한 개 지니고 있을 때 그 아들이 대머리가 될 확률이 50%가 되며, 또 어머니까지 대머리 유전인자를 지니게 되면 그 확률은 75%입니다.
그런데 대머리가 될 확률이 아주 높더라도 대머리가 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몇 가지 조건을 더 충족시켜야만 대머리가 됩니다. 대머리 유전자가 발현하려면 남성 호르몬이라는 뇌관이 있어야 합니다. 일단 유전적 소인이 있어야 하고, 발현여부는 남성호르몬에 의해 좌우됩니다.

단순히 남성호르몬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가지 더 하자면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의 수용체가 있어야 대머리가 됩니다. 수용체라는 것은 세포에 있는 것으로 특정 분자와 결합합니다. 남성호르몬이 아무리 많아도 이를 받다 주는 수용체가 없으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죠. 유전적 확률, 남성호르몬, 수용체 이 세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야 대머리가 발현될 수 있는 필요조건이 성립됩니다.

유전자, 호르몬 등등 복잡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것을 따져보더라도 결국 대머리에 최종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테스토스테론이 5-알파 환원효소에 의해 변환되어 모낭속에서 작용하는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입니다. DHT는 머리에 있는 모발의 생장기, 즉 자라는 기간을 단축시키고 모낭의 크기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즉 굵고 윤기있는 모발이 충분히 자라지 못하고 정상보다 더 빨리 빠지도록 해서 모발의 수명을 단축시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되더라도 대머리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DHT 분비가 많더라도 이를 완화시키는 노력을 하면 탈모증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유전에 의한 대머리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마치 “부모님을 닮아서 발가락 사이가 좁은 사람은 무좀이 있을 수 밖에”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발가락 사이가 좁아서 진균이 서식하고 무좀이 생기기 쉬운 체질이라면, 남보다 더 부지런히 발가락 사이를 공들여 씻고 잘 말려주는 습관을 들여 무좀을 없앨 수 있습니다. 이렇듯 유전자 탓에 탈모가 되기 쉬운 체질이라 할 지라도 노력하는 만큼 그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대머리가 될 60%의 운명을 타고 났지만, 노력을 기울여 40%로 비율을 낮추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탈모의 가족력이 없는 사람도 대머리가 되는 충분조건을 갖추면 대머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이는 탈모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가족력에 의해 발현되는 증상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대머리 증상은 유전이라는 태생적 요인보다는 오히려 내 몸의 건강상태나 생활습관, 마음상태 등 후천적 요인에 따라 발현됩니다. 잘못된 두피모발관리,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으로 두피의 혈액 순환이 나빠지는 외부적인 요인도 탈모를 촉진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대머리가 될 확률을 따지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리와 방법을 알고서 실천하면 해결됩니다.

 한국두피모발관리사협회 학술이사 정영태